2017년 11월, 한국에 헤드쿼터를 두고 함부르크에 브랜치를 둔 스타트업에 입사를 하면서 함부르크에서의 거주를 시작했다. 2년 뒤 그 회사를 그만뒀고, 어디서 일을 계속할까 고민하다 경험삼아 본 면접에서 좋은 인상을 받아 독일에 계속 남아 이제 6개월째 일을 해왔고, 다음 주면 수습기간이 끝난다. 이 글은 이직을 하면서, 그리고 그 후 일을 하며 겪은 경험에 대한 것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한국에서의 이직, 회사생활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독일에서 현지 업체로의 이직이라는 경험자체가 흔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기록을 남겨본다.

구직의 첫 단계는 링크드인 프로필 업데이트였다. 영어 버젼의 페이지를 준비했고, 표현도 가다듬었다. 업데이트를 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리크루터들의 메세지들이 도착했고, 전화로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냐고 물어봤다. 지역도 다양했는데, 함부르크, 베를린, 런던, 스톡홀롬, 취리히 등 다양한 지역에서의 포지션이 열려있었고 입사가 결정된다면 이사,정착 비용을 지원해주겠다고 했다. 인력시장 풀이 유럽 전체이다보니 relocation으로 인한 비용을 회사가 부담하는 경우가 많은 듯 했고, 인상적이었다. 나의 경우엔 독일에서의 이사를 하면서 겪을 스트레스가 상당하리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었기에 이사하지 않고 다닐 수 있는 함부르크로 한정해서 회사를 알아보았다. (마요르카라면 ??!!)

처음엔 영어 공부한다 생각하고 리크루터들의 연락을 다 받고 얘기를 나누었지만, 나중엔 시도 때도 없이 오는 전화와 똑같은 질문에 지쳐 진행중인건 외에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내 이력서가 인기가 괜찮은가? 하는 생각도 했는데, 독일에서 Software Engineer는 많은 회사에서 필요로 하며 특히 Front-End Engineer는 수요가 꾸준하다. 지금 일하고 있는 회사에서도 Front-End Engineer를 채용중이었으니.

리쿠르터는 전화로 간단히 내가 쌓아온 커리어와 사용할 수 있는 기술과 숙련도 그리고 원하는 연봉에 대해 물어봤다. 통화하면서 느낀 것은 몇몇 리쿠르터들이 숙련도가 기술을 다룬 시간에 비례한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내가 React를 사용한 프로젝트를 1년간 했다고 하면, 자기 클라이언트는 3년 이상 사용한 사람을 원한다는 답변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어차피 그런 판단을 하는 회사에 갈 생각은 없어서 아쉽진 않았지만, 기준에 동의를 하긴 어려웠다. React가 잠깐 배워 쓸 수 있는 기술이라고 할 순 없지만 몇년간 갈고 닦을만한 기술은 아니고, 3년간 React로 서비스를 운영한 사람이 1년동안 그걸 한 사람보다 잘한다는 보장도 없는데, 기술 이해에 대한 질문 없이 그냥 사용한 기간만 물어보는 보고 자격에 대해 결정하는 것은 당황스러운 경험이었다. 이것도 독일 스럽다고 해야하나. 통화로 기술면접을 바로 본 경우도 있었는데, 한국 회사에서의 질문과 크게 다르지 않은 질문을 하길래 기술면접 준비는 알고있는 것을 영어로 잘 설명하는 것에 집중하기로 방향을 잡았다.

받은 전화 수에 비해 결과는 그렇게 뜨겁지 않았다. 영어가 아쉽다는 것이 주 이유였다.한 회사에서 오프라인 면접을 진행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려준 사람도 그런 피드백을 준 리크루터 중 한명이었다. 그 리쿠르터는 매우 흥분하며, 이것은 내가 가진 영어실력을 감안할때 아주 훌륭한 기회이며, 이런 기회가 많지 않을 것을 수차례 강조했다. 사실 난 이 리쿠르터가 많이 귀찮았다. 여러번 전화해서 면접 준비는 잘 되고 있는지, 자신감을 주기 위해 전화했다드니 이런 얘길 했는데, 처음엔 영어듣기 연습하는 셈 치고 받았지만 나중엔 그마저도 귀찮아서 그냥 흘려듣거나 안 받았다. 어차피 이 것이 좋은 기회인지 아닌지는 내가 판단하는건데.

그러다 잡힌 첫 오프라인 면접. 리쿠르터가 오피스 주소를 잘못 알려주는 바람에 예정시간보다 한시간 늦게 면접이 시작됐다. 순전히 내 느낌이지만 한시간 동안의 소동을 겪고도 불편한 기색 없이 웃으며 그들과 만난 것이 나름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면접은 자연스러운 분위기에서 진행이 됐는데, 영어로 얘기를 하다보면 느껴진다. 어떤 사람은 내가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고 그냥 넘어가주고, 어떤 사람은 발음이나 표현에 문제 삼으며 이해 안 된다는 제스춰를 하는데, 다행히 이 면접관들은 전자였다. 질문자체도 흔히 생각할 수 있는 Front-End Engineer대상의 질문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다만 한국같았으면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는 이전 회사(네이버, 라인)에 대해 설명을 해야 했고, 얘기를 해줘도 딱히 큰 흥미를 보이진 않았다. 그냥 아시아에 있는 회사중 하나 정도로 생각하는 듯 했다. 그 외엔 내가 했던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하고 쓸 수 있는 기술과 구현 방법에 대해 설명했다. Electron과 앱 자동 업데이트 기능 구현 한 것, Canvas로 Drawing Tool만든 것들에 흥미를 보였고, 라인에서 했던 binary protocol 만들고 그런 것들엔 별로 관심을 안 안 보였다. 내가 해보지 않은 Typescript에 대한 질문도 몇가지 받았는데, 질문자체가 어렵진 않았는데 설명을 매끄럽게 하지 못해서 망했다고 생각했다. 면접이 마무리 될때쯤 ‘좋은 경험이었다’ 하고 일어서려는데, 뜬금없이 Task를 줄테니 해올 수 있겠냐고 물어봤다. 너는 아이도 있고 지금 회사를 다니는 중이니 저녁시간을 내기 힘든 것을 이해하고, 너의 사정으로 진행이 어렵다면 다른 방법을 제안 할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해결할 문제니 너는 Yes or No만 대답하면 된다고 했다. 면접과정에서 이런 배려를 해주는 회사를 처음 만나서 그 말 자체가 너무 고맙게 느껴졌다. 일단 면접을 봤으니 시키는건 다 해보자 싶어서 어떻게든 해보겠다고 수락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영어를 했는데 다음 절차로 넘어가다니. 일단 Task를 준다는 건 탈락의 의미가 아닌 건 분명했고, 이왕 하기로한거 끝까지 열심히 해보자 싶어서 할 수 있는 최대한 빨리 진행해서 과제를 받은지 3일만에 과제를 건넸다. (이 과정에서 리쿠르터는 인터뷰 통과는 엄청 대단한 것이라며, 이 과제를 2일만에 끝낼 수 있다면 좋겠다고 푸시를 해댔다. 아니 면접본 회사에서도 일정 얘길 안 했는데 왜 지가 푸시를.. 혹시나 싶어서 그 회사에서 일정을 정해줬냐고 물어보니 그것도 아니란다. 그래서 그냥 무시하고 내가 만들수 있는 완성도에 도달할만큼 충분히 일정을 쓰면서 진행했다.)

Task를 제출한지 하루가 지나서 입사제안 메일을 받았다. 함께하고 싶고, 수락한다면 바로 계약서를 보내주겠다고 했다. 이제 내가 고민을 할 자격을 갖췄다는 얘기다. 이틀정도 고민을 했다. 가족들의 의견도 들어보고 내가 이 회사를 다니면서 얻을 수 있는 것들 정도를 생각해보았는데, 생각할 수록 내가 이 회사를 다니지 않을 이유는 돈 이외는 없었다. 연봉이 낮진 않았지만 한국에서 회사 다닐때 받았던 처우에 비하면 아쉬웠고, 무엇보다 함부르크 이주후 2년간 매달 적자 생활을 했는데 그걸 계속해야 한다는게 부담이 됐다. 하지만 영어 공부를 하면서 Front-End engineer 커리어를 이어갈 수 있고, 아이들과 보낼 수 있는 시간이 확실히 보장된다는 것이 큰 메리트여서 입사를 결정하게 됐다.

그리고 진행된 연봉협상. 연봉협상에선 내가 처음 겪는 경우여서 다소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처음 리크루터가 전화 했을때 내게 희망 연봉을 물어봤는데 그 당시 난 그때 받고 있던 연봉에서 조금 더 받으면 좋겠다정도의 두루뭉실한 얘길했더니, 그 연봉이 기준이 되어버렸다. 그럴 필요없이 내가 받고 싶은 연봉을 얘기했어야 했는데. 그것이 지금 다니는 회사의 연봉이 기준이 될 필요는 없고, 시장에서 내가 받을 수 있는 돈이 얼만지 알아보고 자신있는만큼 지르면 된다. 혹시나 마지막 처우 협상시 연봉에 대해 다시 말해봤는데,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연봉 얘긴 리크루터에게 전달받은 것으로 생각했고, 그게 마지막 오퍼라고 했다. 사인했고, 난 그 회사에 한 달 뒤 출근하기로 했다.

회사 규모에 따라 복지도 천차만별인데, 내가 입사한 회사는 스타트업이어서 연차에 따른 휴가 28일. 출퇴근용 교통카드. 이게 복지의 전부였다. 좀 더 큰 회사의 경우엔 피트니스 센터, 어학원 지원등의 복지도 있는 듯하다. 이건 독일회사에서 일반적인 거긴 한데, 병가는 무제한으로 쓸 수 있다. 이틀까지는 개인의 판단에 따라 쉴 수 있고, 이틀이상 쉬어야 할 경우 house doctor의 확인증을 제출해야한다.

출근 후 6개월간 probation기간이 진행되는데, 이 기간 동안 연차, 병가 사용은 관례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럼에도 난 크리스마스 시즌에 혼자 회사 나오기 싫어서 팀 리드에게 살짝 얘기해봤더니 4일 휴가 쓸 수 있게 해줘서 휴일 포함 2주동안 쉬었다.

6개월간 회사를 다니면서 경험한걸 간단하게 적어보자면, 가장 장점은 역시 개인시간. 휴가 일수가 많고, 주말 출근, 야근이 없다. 퇴근 시간 이후 메신저나 개인 연락처로 연락하는 것 또한 상상할 수 없다. (일단 개인 연락처를 서로 잘 모른다.) 9시 출근, 6시 퇴근 후 내 시간은 가족과 나를 위해 쓸 수 있었고, 아이들이 잔 이후엔 영어공부에 집중 할수 있어서 몇 개월간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사무실에 각자의 자리가 있는데 이 자리가 모두 차있는 경우는 6개월간 한번도 본적이 없다. 그 이유는 근로 계약의 다양함 때문인데, 사람에 따라 주 20시간, 주3일 근무 등 다양한 고용 계약이 되어 있어서 저마다 계약된 시간에 따라 일을 하니 같은 회사를 다녀도 서로 마주치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나는 풀타임 근무에 휴가도 거의 안 써서 회사 모든 구성원을 만날 수 있었지만.

점심 시간엔 보통 나가서 먹을 것을 사와서 공용 공간에서 밥을 먹는데, 우리파트는 유독 출석률이 좋아서 항상 밥을 같이 먹었다. 식사시간은 20분 남짓. 밥 먹으면서 얘기하고 커피 내려 마시고 바로 업무로 복귀한다.

미팅을 자주 갖는 편이다. 위키에 문서를 정리하고, 읽는 텍스트 위주, 비동기 커뮤니케이션 보다는 우선 모여서 같이 얘기하고 토론하는 문화이다. 효율적인 방법은 아니지만 내가 영어공부하기엔 좋은 환경이었다. 매일 아침 스크럼 미팅을 하는데, 매일매일 자기전에 어떤 얘기할지 스크립트 쓰고 외워 갔다.

이 사진은 11월에 있었던 쾰른 카니발 축제를 오피스에서 했을때 사진인데, 오전 11시부터 한시간동안 술 마시고 노래 틀고 놀다가 12시부터 다시 업무 복귀해서 일했다. 난 숙취가 심한편이라 술을 입에 대지도 않았다. alt text

그렇게 6개월이 지나 probation기간이 끝나고 정식 직원이 되었다. 차이점이라면 probation기간엔 특별한 사유없이 직원을 해고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이제 그렇지 않다는 것. 휴가를 마음껏 쓸 수 있다는 것. 28일에 달하는 휴가를 잘 써볼 생각에 5월 1주, 7월 2주, 10월 1주, 12월 2주. 총 6주에 달하는 휴가를 제출하고, 휴가 계획을 세우고 항공권과 숙소도 예약했다. 5월부터 2달에 한번씩 1주 이상의 휴가라니. 휴가 보낼 생각에 일할 맛 난다 생각했다.

3월 중순. 코로나가 전세계를 휩쓸고, 투자가 위축되고, 우리 회사에 대한 투자가 철회되면서 회사는 파산을 하게 되었다. 이 글을 시작할땐 휴가 계획을 세운 뒤라 아주 기쁜 마음이었는데, 독일어로 쓰여진 파산 동의서에 사인을 한뒤에 마무리를 하게 되었다. 계획했던 휴가는 자연스럽게 보류됐고, 작년에 썼던 이력서는 좀 더 최신 버젼으로 업데이트 되었다.

마지막에 글이 이렇게 끝나는 이유는 이러한 결과 또한 이직 과정의 하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해외에서의 이직은 한국에서의 그것보다 정보가 부족한 상태에서 진행될 수 밖에 없어 리스크가 클 수 밖에 없다. 난 운이 좋게 좋은 동료들을 만났지만 한편으로는 6개월의 임금도 남아있지 않은 상태에서 새로운 직원을 채용한 회사가 다소 무책임해보이기도 했다.